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화장과 화장품의 역사

화장과 화장품의 역사.

 
인간은 누구나 건강하고 아름다운 피부를 가꾸고 유지하련ㄴ 본능적인 욕구가 있고, 이를 만족시키기 위해 여러 가지 인위적인 방법들이 사용되어 왔다. 특히 화장에 대한 의존도는 과거에도 그러하였지만 최근에 더 높아지고 있는 추세이다.
화장의 기원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벽화나 토우등의 여러 가지 ㅇ물과 문헌들로 짐작컨대 인류가 어울려 살기 시작한 구석기시대부터 화장을 한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인류는 얼굴뿐만 아니라 전신의 피부에 색을 발랐는데, 이것은 주술적, 종교적 행위로써 이용되건 자연과 비슷하게 은폐, 위장하여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신분이나 성별, 계급 특정 집단에의 소속 등을 구분하기 위함이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인류의 역사와 함께한 화장은 현대 과학문명의 급속한 발전과 생활수준의 향상으로 생활의 여유를 가지게 됨으로써 아름다움에 대한 기대와 욕구가 높아짐에 따라, 신체보호를 위한 기보적인 기능 외에 매력 발산의 도구로서 심리적 만족감을 높이는 데까지 주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1) 세계 화장품의 역사 

 
화장의 역사는 인류 역사의 시작과 함꼐 시작되었기 때문에 원시시대의 화장품이 현재의 화장품과 구별은 되지만 그 기원이 된다고 할 수 있다 고고학적으로 가장 오래된 화장과 관련된 유물로는 기원전 7000년 경으로 추정되는 수메르족의 묘에서 발견된 지방에 향을 넣은 고대 화자품과 화장거울을 들 수 있다. 근대적인 화장품의 기원 또한 확실하지 않으나 이미 오래전부터 이집트에서 연지와 분이 제조되었다는 기록과 중국을 비롯한 동양 각국에서 붉은색을 사용하여 화장을 했다는 기록 등으로 보아 기원전 2000년 저부터 사용되었을 것이라 추측된다. 
 
1. 이집트 시대
최초의 화장에 대한 기록은 기원전 3000년경의 고대 이집트 시대이고 따라서 화장품의 역사는 고대 이집트를 중심으로 그 발자취를 더듬는 것이 일반적이다. 고대 이집트의 화장품에는 미라를 만들기 위해 사용했던 향유 이외 머리에 사용했던 염색제, 퍼머제 오일 등이 있는데 특히 목욕 문화가 발달하여 목욕용품과 향유가 발달하였다. 이집트의 화장은 클레오파트라 시대에 절정을 이루었으며 붉은색의 헤나 염료와 이끼에서 얻은 보라색의 리트머스와 흰색의 백납등을 사용하였다. 
또한 강한 햇빛으로부터 눈을 보호하고 곤충의 접근을 막기 위해 코올을 이용하여 눈화장을 하였고 빗, 거울, 면도기 등의 다양한 미용도구도 판매되었다.
 
2. 그리스 시대
그리스인들은 건강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있었으므로 그리스 시대의 화장은 미용ㅈ거인 측면보다는 의학적인 측면에 주로 초점이 맞추어졌다. 의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히포크라테스는 식사요법, 마사지, 운동 햇빛 목욕 등이 조화를 이루어질 때 건강한 피부를 유지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피부관리에 큰 관심을 보였는데 이는 현대의 미용에 크게 기여하였다. 또한 갈레노스는 이집트 화장품에 대한 기록을 정리하였고 피부의 수분증발을 막아주고 피부를 햇빛으로부터 보호하는 현대적인 화장품인 콜드크림을 제조하였다.
 
3. 로마 시대
 
로마 시대에 이르러 화장은 귀족과 여성을 중심으로 전성기를 이루었다.
이 당시 화장은 남녀 모두에게 행해졌고 물질적인 풍요와 생활의 여유에 대한 표현의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하였다. 민주정치와 자유토론 정치를 이루었던 로마 시민들은 토론을 즐기는 사교장으로 대중목욕탕을 이용하였으므로 자연스럽게 목욕 문화가 발달하였다. 남자들은 중기탕, 향유 마사지 향수 등을 즐겼고, 상류계급의 여성들은 피부 마사지, 색조화장, 페디큐어 머리손질등을 선호하였다. 이들은 흰 피부를 선호하여 납이 들어있는 백연을 과도하게 사용함으로써 안색이 변하고, 치아가 검어지는 등의 건강이상을 초래하기도 하였다.
 
4. 중세 시대
중세 초기에는 그리스 철학과 로마의 영향 및 기독교적 금욕주의 사상으로 화장이 금기시되었다. 하지만 십자군 전쟁 이후 안티몬과 향유 등의 진기한 화장재료들이 동양의 문물로부터 전해지고 의학과 과학이 발달함에 따라 화장품에 대한 관심이 되살아 났으며 중세말기에는 그리스나 로마 시대와 같이 여성들 사이에 창백한 피부, 넓은 이마, 갈색 아치형의 눈썹, 장밋빛 작은 입술, 가지런한 손톱 등이 유행하였다.
 
5. 르네상스 시대 
십자군 전쟁과 마르코폴로 등의 영향으로 인도와 동양의 문물을 접한 유럽은 향장과 향료 연구에 큰 발전의 계기를 마련하였다. 염료, 식물류 나무껍질, 석면 산화아연, 석유 향신료 등의 교역 기록이 있고 유화와 염료뿐만 아니라 색조화장에 새로운 색소들을 많이 사용하게 되었다. 이 시기의 가장 두드러진 발전은 알코올을 이용한 증류방법을 알아내어 알코올이 정식적으로 향수류에 쓰이게 된 것이다.
 
6. 바로크 로코코 시대
17세기에는 예술의 발전, 종교개혁 자본주의의 출현, 식민지 개척 등의 다양한 영향으로 개인주의와 향락주의의 쾌락과 사치를 추구하게 되었다. 상류층 여성들은 살색, 핑크색의 창백한 피부를 표현하기 위하여 백연을 사용하였고 17세기 후반에는 실크나 벨벳으로 만든 뷰티패치를 이용하여 여드름이나 천연두의 흔적을 감출 수 있게 하였으며 프랑스에서는 17-18 세기에 걸쳐 향수 제조업이 크게 발전하였다.  스페인에서 수입한 아몬드 연고, 코코아버터 바닐라 등을 ㅣㅇ용하여 크림으로 된 피부세정제가 만들어졌으며 영국에서 청교도나 퀘이커 교도들의 전유물로 인식되었던 목욕을 위해 1614년 처음으로 비누가 생산되었으나 정부의 규제로 2세기 동안 높은 과세에 묶여있었다. 
 
7. 근대 이후
 
산업혁명의 영향은 화학분야에도 급속한 발전을 가져왔고 이는 화장품의 성분 및 제조술의 개선과 품질의 개량을 가져왔다. 1866년 산화아연을 개발하여 백납분 보다 안전한 새로운 분을 유럽뿐만 아니라 미국까지도 공급하였고 19세기 중반부터는 자연주의의 영향으로 일반 여성들은 화장에 있어서 색조보다는 위생과 청결을 더욱 중요하게 여겨 가정에서 샤워실 또는 목욕실을 만들어 목욕의 횟수를 늘리고 그에 따라 세정용 비누의 사용이 일반화되었으며 두꺼운 화장은 연극이나 무대로 한정되었다.